분쟁 지역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비가시화된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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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전반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강제 노동 및 그 외 다양한 형태의 착취에 특히 취약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채용이나 이들의 근로가 전 세계의 분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음에도, 분쟁 지역 내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는 종종 비가시화되곤 한다. 이러한 분쟁 지역 내 이주노동자들은, 강제노동의 주요 식별 지표에 해당하는 채용 사기 및 채무노역(debt bondage), 그리고 법치주의의 붕괴를 겪으며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분쟁 발생 시 인건비 절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에, 분쟁 지역 내 이주노동자 채용이 증가하는 추세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분쟁 상황에 처해있다고 해서, 근로자를 보호할 고용주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쟁 지역의 경우 근로자들이 겪는 위험이 증가하기에, 고용주들은 관련 기준을 준수하고 인권 실사를 이행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 세계 분쟁 지역 내 위험한 근로 환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점령지(OPT)의 건설, 의료, 민간 경비, 농업 분야에서는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인 노동자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2023년 10월 중동 지역의 분쟁이 본격화된 후, 아시아 및 아프리카 전역에서 온 노동자들이 살해되거나 납치당했다. 건설 노조는 인도 노동자들의 이스라엘 취업을 용이케 한다는 취지로 인도와 이스라엘 간 체결된 노동협정의 적용이 최근 확대됨으로써,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위험에 빠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레바논 내 공습 지역에 인접한 공단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 중 상당수는, 분쟁으로 인해 고용이 중단된 후에도 레바논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레바논 가정의 가사노동자로 고용된 이주민들 역시, 고용주가 피난을 간 후 쉼터에 입소하거나 기타 지원을 받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을 위해 남아시아 전역에서 이주노동자를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쟁 지역 내 일부 이주노동자들이 제공받는 임금이 해당 지역 내 일반적인 임금 수준보다 높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위험한 작업 환경을 고려한 위험수당이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분쟁 지역의 외국인 계약직 노동자들이 대부분 위험수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2024년 4사분기 기준으로, 이스라엘 건설 현장의 이주노동자들의 시급은 약 미화 10달러 정도였는데, 이는 이스라엘 최저시급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채용 사기 때문에 생명을 위협받는 이주노동자들
채용 사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지속 중인 분쟁으로 인한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관하여 기망을 당하거나 적절한 고지를 받지 못하곤 한다. 이러한 채용 사기에 SNS가 차지하는 역할은 점점 커지고 추세이다. 가령 두바이에서 근무할 사람을 찾는다는 온라인 채용 광고에 응하여 해외취업을 하게 된 인도 노동자들이, 출국 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지역으로 이송되어 러시아 군에 복무하게 된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또 다른 사례로, 데이터 입력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수천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미얀마 내 분쟁 지역에서 강제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분쟁 지역에서 채용되었거나 분쟁 지역에서 근무를 하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채용 수수료 등 관련 비용을 지불하고자 차용한 금전을 상환하기 위해 채무노역을 해야 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채무가 잔존하는 상황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은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직장을 그만두기 매우 어렵다. 노동권 단체 베리테(Verité)와 협력하는 인도 NGO들에 의하면, 인도 출신 건설 노동자들은 이스라엘 취업을 위한 이주 경비를 직접 부담해야 한다. 러시아 시민권 취득을 약속받은 한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는, 해외 취업에 소요된 미화 3,600달러 가량의 경비를 지불하기 위해 대출을 받은 후 러시아 군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레바논 내 섬유 산업에 취직하고자 이주해온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취업 경비에 해당하는 미화 4,000달러 가량의 빚을 지게 되었다. 레바논에 이주해온 수만 명의 케냐인들은, 엄청난 액수의 수수료 지급을 요구하는 사설 대피 서비스 제공 사기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분쟁 중에도 윤리적인 채용 기준을 준수할 기업의 의무
분쟁의 발생은 근로자가 처한 위험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고용주에게도 추가적인 인권 침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분쟁 상황에서 고용주들이 윤리적 채용 기준이나 국제노동기구(ILO)의 2019년 공정 채용에 관한 일반 원칙 및 운영 지침(General Principles and Operational Guidelines for Fair Recruitment)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분쟁 발생 시, 기업과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의 본국 귀환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등 근로자 채용에 관한 인권 실사 의무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권 침해가 심화되어 비가역적인 손해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방 혹은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주는 채용 과정에 관여하는 모든 중개업자들을 선별하고 이들의 행위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채용 중개업자들은 윤리적 채용 기준 및 절차가 준수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분쟁 지역 내 채용에 인권 실사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고용주 및 채용 중개업체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베리테는 고용주 및 채용 중개업체들이 국제 인권 기준을 준수하여 이주노동자 모집, 고용, 귀환 관리를 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베리테의 명확한 평가 기준은 예측가능성이 없거나 복잡한 형태의 분쟁 상황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베리테의 공급망 책임기준(Responsible Sourcing Tool)은 민간 보안업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단계적 윤리적 채용 지침을 제공한다. 채용 알선 비용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된 베리테의 FFACT 프로젝트(Fostering Fee Accountability and Cost Tracking Project)는, 채용·알선 비용 추적 및 채무노역 방지에 사용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베리테가 제공하는 강제 노동 추적 플랫폼인 CUMULUS와 채용 비용 계산기 역시, 고용주가 채용 비용을 추적하고 추산하여 과도한 채용 수수료 부과를 방지하도록 함으로써 근로자가 채무노역의 위험에 처할 위험을 줄이는 데에 활용될 수 있다.
사라 린스(Sarah Lince)는 베리테의 선임 프로그램 매니저이다. 사라는 노동이동성 및 윤리적 채용에 대한 전문 지식과 건설업에서 쌓은 폭넓은 실무 경험을 활용하여,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복잡한 프로젝트를 이끌며 글로벌 공급망에서 강제 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