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실사의무화(mHREDD) 없는 '스마트 믹스'는 불가: 한국, 대만, 일본 내 효과적인 법적 프레임워크 개발을 위하여
캘빈 퀀트(Calvin Queant) - 국제 인권 NGO 휴먼라이츠 나우(Human Rights Now)의 제네바 지역 대표
더 강력한 실사법 추진의 필요성
전 세계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갖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인권 및 환경 실사 의무화(mandatory human rights and environmental due diligence, 이하 “mHREDD”)법을 빠르게 도입할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본, 한국, 대만에 위치한 거대 기업들이 막대한 세계적 영향력을 자랑하는 가운데, 이들 기업 및 해당 기업의 광범위한 공급망은 그 본사가 위치한 국가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노동자들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타깝게도 실효성 있는 mHREDD 입법이 아직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기업은 적절한 감독 없이 사업을 운영하며 공급망 전반에 걸쳐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를 초래하고 있다.
일본, 한국, 대만의 시민사회단체 연합은 정부에게 삼성, 미쓰비시, 포모사 플라스틱과 같은 기업의 활동에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하며, mHREDD 입법을 위해 국가가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이러한 목소리는, 기업들이 단순히 재정적 이익 뿐만 아니라 각 기업의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지역사회와 생태계의 안녕을 위해 책임감 있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경영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한국, 대만 기업들의 공급망 내 인권침해
미쓰비시 상사 등 주요 기업들이 연루된 일본의 참치 산업에서는 공급망 내 인권침해에 관한 문제들이 있어왔다. 특히 강제 노동에 관한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 참치 산업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기업들은 강제 노동 의혹이 제기된 후에도 그러한 문제를 파악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즉, 이들 기업은 중대한 인권 침해에 계속해서 연루되어 있는데, 이는 UN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UNGP)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불공정 노동 관행이나 환경 파괴 등 참치 산업에 내재된 여러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참치 산업 내 전반적인 투명성 결여 및 보고 메커니즘의 부재 등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사례는 베트남에서 발생한 삼성의 환경 파괴 사건이다. 삼성은 베트남에서 오염 물질 관련 규제가 약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환경 파괴 사실을 은폐할 수 있었다. 삼성은 수질오염 및 화학물질 누출로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지만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실제로 삼성의 본점 소재국인 대한민국이나 기타 삼성이 사업을 운영하는 국가들에서는 삼성의 위와 같은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적절한 메커니즘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으로 인해, 광범위한 인권 침해 전적을 보유한 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권리 침해를 자행한 바 있음에도 별다른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사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베트남 내 많은 문제의 원인이 된 또다른 다국적 기업으로 대만의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이 있다. 포모사 플라스틱이 베트남 내 4개 지방의 양식 산업과 연안 어업을 파괴했다는 혐의로 소송이 제기된 데 이어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미친 악영향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포모사 플라스틱의 사업 방식 개선을 촉구하는 시민, 언론인, 블로거들은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대만과 베트남에서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장치가 부재한 가운데, 환경 파괴 및 권리 침해에 연루된 기업들은 별다른 법적 제재 없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활동에 대해 효과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제도를 마련하여 이러한 면책의 굴레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월신 리화 법인(Walsin Lihwa Corporation)과 이에 푸이 기업(Yieh Phui Enterprise) 등, 인도네시아에서 니켈 채굴 사업을 하는 다른 대만 기업들은 수차례의 작업 관련 사고 발생과 환경 파괴 위험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전자 및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해외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한 효과적인 법적 수단은 아직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법의 적절한 이행 및 적용을 방해하는 관료주의적 문제들, 경쟁력 상실을 우려한 다국적 기업의 해외 이전, 그리고 노동자들의 불만으로 인한 남소 가능성 등으로 인해, 각국 정부는 규제 강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 한국, 대만은, 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European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와 같은 훌륭한 선례를 적극 참고하고 공급망 내에서 엄격한 규제를 시행함으로써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과 인권 보호를 도모하며 노동 인력을 유지하는 등 장기적인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으리라는 점을 양지해야 한다.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
2022년 9월, 일본 정부는 공급망 내 인권존중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Respect for Human Rights in Responsible Supply Chains)을 발표했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예방과 구제를 제공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실제로 일본의 인권존중 가이드라인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일부 기업이 자발적으로 해당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인권 실사에 성실히 임할 수는 있겠지만, 강제력이 없기에 상당수 기업들이 이를 준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협업을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2023년 9월 1일 국회에 제출되었다 (의안정보시스템 바로가기). 만일 통과되었다면 당해 법률안은 아시아 최초의 mHREDD 법이 될 수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해당 법률안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정치적 혼란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관련 법률 제정 전망은 불투명해 보이나, 법률 제정에 대한 시민사회, 학계, 공공기관, 국제기구의 요구와 지지는 갈수록 강해지는 추세이다.
시민사회는 기업의 위법 행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를 지원하며 입법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기업이 마땅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기업의 활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이러한 노력에 응답해야 한다. 이제 일본, 한국, 대만에서 강력하고 구속력 있는 mHREDD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의 도입 및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아직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EU가 새롭게 발표한 옴니버스 패키지는 아직 과도기를 겪고 있으며, 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의 실효성 여부 및 시의적절한 이행 가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의 이행이 EU 시장에서의 기업의 책임 이행에 기여할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체에서 UN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이 준수되는 데에 필수적인 기반이 될 것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본, 한국, 대만에서 더 강력한 mHREDD 법안의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기업들의 도덕적 의무에 따른 책임감 있는 사업활동을 담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원론적으로는, 다국적 기업들의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이해관계자들과 권리보유자들 모두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공평한 경쟁의 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권리 보호 조치가 마련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업과 시민사회 간 강력한 연대가 결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협력해야만 기업이 자신의 활동에 책임을 지고 지속가능성 및 책임준수 원칙에 부합하는 비즈니스 관행이 정착되는 미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